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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에서
애니메이션은 소위‘만화영화’라 불리며, 아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상상력과 꿈을 키우는 어린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철완 아톰鐵腕アトム’을 보면서 자란 세대에 의해 현재의 기술 강국 일본이 만들어졌으며, 디즈니Disney 만화를 통해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에 파급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본래 애니메이션은 ‘숨을 불어넣다, 생기 있게 하다, 움직임을 주다’는 뜻을 가진 영어 ‘animate’에서 온 말로 사물이나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는 특징을 나타낸 말이다. 하지만 이제 애니메이션은 그림이 가진 자유로운 이미지 표현, 영화나 연극에서의 이야기 구성, 이야기와 어울리는 음악이 모두 어우러진 종합문화 예술작품이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만화영화’가 아니라 종합문화 콘텐츠다.
‘애니메이션’하면 대부분 미국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를 위시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린다. 하지만 <상상에 숨을 불어넣다>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상업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전 세계의 아트 애니메이션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5명의 예술가는 20세기를 통틀어, 그리고 현재까지도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각본에서 스토리보드, 촬영과 편집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아본다. 또 거장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제작상의 어려움,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의 풍경은 이 책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보너스다.

애니메이션 거장의 미장센을 엿보다
15명의 거장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편안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마치 거장들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어떤 감독은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또 다른 감독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한 권의 책에서 세계 애니메이션의 거장의 생각과 촬영기법, 음악과 배경, 연출기법 등의 창작론은 물론 그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화가,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상상에 숨을 불어넣다>는 애니메이션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무엇인가???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그림과 사물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를 지탱하는 자신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예술가 또는 거장과 어울리지 않는 제작비를 어떻게 마련할지와 같은 현장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래서 더 현장감이 살아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라면 누구라도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로밋을 움직일 때는 종이 클립을 단 가느다란 막대기로 점토를 누른다. 표정의 변화는 몸통을 붙잡고 살짝 얼굴을 누르면 그로밋이 불쾌한 표정으로 바뀐다. 한편, 월레스가 말할 때는 입모양을 조금씩 바꿔야 한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움직여서 한 장면씩 촬영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면 쉽다. 하지만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미덕은 애니메이터의 지문이 묻어있는 소박함이다.”
- 닉 파크